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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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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 도공은 춘추 시대 허나라의 군주로, 기원전 546년부터 기원전 523년까지 재위했다. 그는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회맹에 참여했고, 초나라의 영왕, 채나라 영후 등과 함께 오나라를 공격했다. 재위 기간 동안 허나라는 여러 차례 천도를 겪었으며, 도공은 기원전 523년 세자 지가 준 약을 먹고 사망하여 시해 의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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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도공
기본 정보
이름悼公 강매
왕조
봉작
강매
시호
대수17대
통치 기간
재위 기간기원전 546년 - 기원전 523년
가족 관계
아버지영공
아들허남 사
참고 문헌

2. 역사

허 도공 시기는 주변 강대국, 특히 초나라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시기였다.

재위 초반에는 송나라에서 열린 제후 회맹에 참여하고(기원전 546년), 노나라 양공, 송나라 평공 등과 함께 초나라를 방문하거나(기원전 545년) 초 강왕의 장례에 참석하는(기원전 544년) 등 외교 활동을 펼쳤다.[1]

기원전 539년부터는 초 영왕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허 도공은 초 영왕이 주도한 신(申) 땅에서의 회맹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가을에는 초나라를 따라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이 전쟁 중에 초나라는 제나라경봉을 처형하고 뢰(賴)나라를 멸망시켰는데, 허 도공 역시 이 과정에 함께했다.[1] 이후 기원전 537년 겨울에도 초나라를 따라 다시 오나라를 공격했다.[1]

초나라의 간섭은 허나라의 잦은 수도 이전으로 이어졌다. 재위 기간 동안 성보(기원전 533년), (기원전 529년), 백우(기원전 524년) 등으로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겨야 했다. 이는 당시 허나라가 처한 불안정한 상황을 보여준다.[1]

기원전 523년 여름, 학질을 앓던 허 도공은 태자 지(太子 止)가 올린 약을 먹고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태자 지는 군주 시해의 의심을 받고 진나라로 망명했으며, 허남 사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1]

이처럼 허 도공의 재위 기간은 강대국의 압력 속에서 외교적 노력과 불안정한 천도가 반복된 시기였으며, 춘추좌씨전 등의 기록을 통해 당시 허나라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1]

2. 1. 재위 기간

허 도공의 재위 기간은 대략 기원전 546년부터 기원전 523년까지이다. 이 시기 허나라는 주변 강대국, 특히 초나라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재위 초기인 기원전 546년 여름, 허 도공은 송나라에서 열린 제후 회맹에 참여하여 진나라, 초나라, 정나라 등 여러 나라 대표들과 만났다. 이듬해인 기원전 545년에는 송나라에서의 맹약을 바탕으로 노나라 양공, 송나라 평공, 진나라 애공, 정나라 간공과 함께 초나라를 방문했으며, 기원전 544년에는 초나라 강왕의 장례에 참석하여 조문하는 등 외교 활동을 이어갔다.

기원전 539년부터는 초나라 영왕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허 도공은 초 영왕이 주도한 신(申) 땅에서의 회맹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가을에는 초나라를 따라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이 전쟁 중에 초나라는 제나라경봉을 처형하고 뢰(賴)나라를 멸망시켰는데, 허 도공 역시 이 과정에 함께했다. 이후 기원전 537년 겨울에도 초나라를 따라 다시 오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의 간섭은 허나라의 잦은 수도 이전으로 이어졌다. 기원전 533년에는 초나라 공자 기질(훗날 평왕)에 의해 수도가 이(夷, 훗날의 성보城父) 땅으로 옮겨졌고, 기원전 529년에는 채(蔡) 땅으로, 기원전 524년에는 석(析, 훗날의 백우柏牛) 땅으로 다시 옮겨지는 등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천도를 겪어야 했다.

기원전 523년 여름, 허 도공은 학질에 걸렸다. 5월 무진일에 태자 지(太子 止)가 올린 약을 먹고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태자 지는 진나라로 달아났으며, 기록에는 군주를 시해했다는 평가가 남았다. 군자는 "진심으로 군주를 섬기려면 약을 올리는 데 신중했어야 했다"고 평했다. 그해 겨울, 허 도공의 장례가 치러지고 허나라 남작 사(許男 斯)가 뒤를 이었다. 이처럼 허 도공의 재위 기간은 강대국의 압력 속에서 외교적 노력과 잦은 천도로 점철된 시기였다.

2. 1. 1. 외교적 노력과 회맹 참여

기원전 546년 여름, 노나라의 숙손표는 진나라의 조무, 초나라의 굴건, 채나라의 공손 귀생, 위나라의 석악, 진나라의 공환, 정나라의 양소, 허나라 사람, 조나라 사람과 송나라에서 회동했다.

기원전 545년, 송나라에서 맺은 맹약을 이유로 노나라 양공, 송나라 평공, 진나라 애공, 정나라 간공과 함께 초나라로 갔다.

기원전 544년 여름 4월, 초나라 강왕의 장례에 참석하여 노나라 양공, 진나라 애공, 정나라 간공과 함께 조문하고 서문 밖까지 배웅했다. 다른 제후들의 대부들은 모두 묘소까지 갔다. 이후 겹오가 즉위하고 영왕이 영윤이 되었다.

기원전 543년, 정나라의 양소가 허나라로 도망쳤으나 정나라 사람들에게 살해되었다.

기원전 539년 봄 정월, 초나라로 갔으나 초나라 영왕이 막아섰다. 초 영왕은 정나라 간공을 막고 전강 남쪽 땅을 회복했는데, 허 도공도 이때 함께했다. 같은 해 여름, 허 도공은 초 영왕, 채나라 영후, 진나라 애공, 정나라 간공, 서공, 등 성공, 돈공, 호공, 심자, 주 장공, 소주 목공, 송나라 세자 좌, 회이와 신 땅에서 만났다.

가을 7월, 이들과 함께 오나라를 공격했다. 이때 송나라 세자 좌와 정나라 간공이 먼저 돌아갔고, 송나라의 화비수와 정나라 대부가 따랐다. 초나라의 굴신이 주방(朱方)을 포위했다. 8월 갑신일, 이를 격파하고 제나라경봉을 사로잡아 그 일족을 멸했다. 초 영왕이 경봉을 처형하려 하자 초거(楚擧)가 반대했지만 왕은 듣지 않고, 제후들 앞에서 경봉에게 자신의 죄를 선포하게 했다. 경봉은 오히려 초 영왕이 자신의 조카인 겹오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비난했고, 초 영왕은 즉시 그를 죽이라고 명했다. 마침내 제후들과 함께 뢰를 멸망시켰다. 뢰나라 군주는 허나라 희공의 예를 따라 예우받았고, 뢰나라 백성들은 언(鄢)으로 옮겨졌다. 초 영왕은 허나라를 뢰나라 땅으로 옮기려고 투위구(鬬韋龜)와 공자 기질을 보내 성을 쌓게 했다.

기원전 537년 겨울, 허 도공은 초 영왕, 채나라 영후, 진나라 애공, 돈공, 심자, 서나라 사람, 월나라 사람들과 함께 오나라를 토벌했다.

기원전 533년 봄 2월 경신일(1월 28일), 초나라 공자 기질(훗날 평왕)이 허나라를 엽(葉)에서 성보(城父)로 옮겼다.

기원전 529년 가을, 초나라 평왕이 복위한 후, 과거 초 영왕이 채나라를 멸망시키고 허, 호, 심, 도, 방, 신나라를 형(荊) 땅으로 옮겼던 것을 되돌려, 겨울에 허나라를 다시 채(蔡)나라 땅으로 옮겼다.

기원전 524년, 초나라는 허나라를 백우(白羽) 땅으로 옮겼다.

이처럼 허 도공의 재위 기간 동안 허나라는 초나라의 영향 아래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겨야 했다.

2. 1. 2. 오나라 정벌과 뢰나라 멸망

기원전 539년 봄, 허 도공은 초나라로 갔으나 초 영왕에게 막혔다. 이후 허 도공은 초 영왕의 영향력 아래 여러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같은 해 여름, 허 도공은 초 영왕, 영후, 진 애공, 간공 등 여러 제후와 함께 신(申) 땅에 모였다. 가을 7월에는 이들 제후들과 함께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이 과정에서 초나라는 제나라경봉을 사로잡아 처형하고, 제후들과 연합하여 뢰(賴)나라를 멸망시켰다. 뢰나라 군주가 항복하자, 초 영왕은 과거 성왕이 허 희공을 대우했던 예를 따라 뢰 군주를 풀어주고 예우하였다. 초 영왕은 뢰나라 백성들을 언(鄢) 땅으로 옮겼으며, 허나라를 뢰나라가 있던 땅으로 옮기려고 투위구와 공자 기질에게 성을 쌓게 하기도 했다.

기원전 537년 겨울, 허 도공은 다시 초 영왕, 채 영후, 진 애공 등과 함께 월나라 사람들과 연합하여 오나라를 토벌하는 데 참여했다.

초나라의 간섭으로 허나라는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겨야 했다.

연도내용
기원전 533년초나라 공자 기질이 허나라를 엽(葉)에서 이(夷, 후의 성보城父)로 옮김.
기원전 529년초나라가 채나라를 멸망시킨 후, 허나라를 형(荊) 땅에서 다시 채나라 땅으로 옮김.
기원전 524년초나라가 허나라를 석(析, 후의 백우白羽)으로 옮김.



이처럼 허 도공의 치세 동안 허나라는 초나라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초나라가 주도한 전쟁에 동원되고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겨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 1. 3. 잦은 천도

허나라는 허 도공 재위 기간 동안 초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겨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다.

기원전 539년, 초 영왕은 뢰(賴)를 멸망시킨 후, 허나라를 뢰 땅으로 옮기려고 계획하고 투위구(鬬韋龜)와 공자 기질(公子棄疾, 훗날의 초 평왕)을 보내 성을 쌓게 하였다.

기원전 533년 봄 2월, 초나라 공자 기질은 허나라의 수도를 엽(葉)에서 이(夷, 훗날의 성보城父) 땅으로 실제로 옮겼다. 이때 주래(州來)와 회수 북쪽의 땅을 허나라 영토에 더해주었다.

기원전 529년 가을, 초 평왕이 즉위한 이후, 과거 영왕 시절 형(荊) 땅으로 강제로 옮겨졌던 허(許), 호(胡), 심(沈), 道國|도중국어, 房國|방중국어, 신(申) 등의 나라들을 다시 이전시켰는데, 이때 허나라는 채(蔡) 땅으로 옮겨졌다.

기원전 524년, 초나라는 또다시 허나라를 석(析, 훗날의 백우柏牛) 땅으로 옮겼다.

이처럼 허 도공 시대의 허나라는 강대국 초나라의 정치적, 군사적 필요에 따라 거듭하여 수도를 옮겨야만 했다.

2. 2. 도공의 죽음

기원전 523년 여름, 허 도공이 학질에 걸렸다. 5월 무진일(4월 8일), 태자 지(世子止zho)가 올린 약을 먹고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태자 지는 진나라로 달아났다.

기록에는 태자 지가 '임금을 시해했다'고 적혔다. 이에 대해 군자는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임금을 섬기려 했다면, (결과적으로 해가 된) 약을 올리지 않는 것이 옳았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같은 해 겨울, 허 도공의 장례를 치렀고 허남 사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3. 가계


  • 영공
  • (가칭) 세자 지|세자 지중국어
  • (가칭) 공자 훼이|공자 훼이중국어
  • 허남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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